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파스쿠알 요르당이 행렬 역학에 대한 체계를 만들고 있을 때, 그 곁에는 또 따른 절은(아니 어린)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 Pauli가 있었습니다. 1900년생 파울리는 아놀드 좀머펠트의 학생으로, 1921년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보른과 함께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파울리는 이미 10대 시절, 상대성이론에 대한 논문을 썼고, 이후 200페이지가 넘는 상대성이론에 대한 "교과서"를 쓰는 등, 그의 천재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보른-요르당은 행렬 역학의 이론적인 측면을 지속적으로 발전 시켰으나, 행렬 역학의 치명적인 단점은 극복하지 못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렬 역학을 이용해서는 구제척인 문제를 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행렬 역학에서 등장하는 위치, 운동량 행렬은 차원이 무한대인 행렬입니다. 만일 위치, 운동량 행렬이 유한 차원 행렬이라면, Trace (행렬의 대각 성분의 합) 의 성질, $\text{Tr}(AB) = \text{Tr}(BA)$에 의해서 $[x,p]=i\hbar$는 모순이 됩니다. 크기가 무한한 행렬을 다루어야 하니, 간단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생각할 것이 너무 많고,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간다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양자역학 문제를 풀 때는 행렬역학이 아닌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이용합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경우 친숙한 미분방정식의 형태로 주어지며, 해석적인 방법으로 푸는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수치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소 원자 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소 원자 문제의 경우 위치 에너지가 $\frac{1}{|X|} = \frac{X}{X^2}$와 같이 주어지는데, (여기서 $X$는 위치에 대응되는 행렬입니다) 행렬의 역수가 나올 때, 이걸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가 애매합니다. 역행렬로 취급하는 것이 그럼직한데, 그렇게 해도 된다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행렬 역학에서 주어진 것은 단지 해밀토니안이 $H = \frac{1}{2}P^2 - \frac{1}{X}$ 로 주어진다는 것과(편의상 상수는 모두 1로 두었습니다), $H$에서 $X, P$는 모두 연산자(행렬)인데, $[X, P]=i\hbar$ 의 관계식을 만족한다는 것 두가지 뿐입니다. 이 두 주어진 조건으로 부터 행렬 $H$를 대각화 하고, 대각 성분의 값(고유 에너지)를 구해야합니다. 딱 봐도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부 수준의 양자역학 교과서에서는 이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파울리가 풀어냈습니다. 파울리는 (영문번역) On the hydrogen spectrum from the standpoint of the new quantum mechanics 라는 논문을 통해서 행렬 역학에 기반을 둔 수소원자 선 스펙트럼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이 논문은 Zs. f. Phys 36권을 통해 출판되었는데, 파울리가 이 논문을 저널에 투고한 시점은 1926년 1월 17일 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첫 논문이 1925년 7월이고, 보른-요르당의 논문이 1925년 9월에 나왔으니, 단 3달 정도만에 문제를 풀고 논문을 작성한 것 입니다. 파울리의 결과로 인해서 행렬 역학은 단순히 그럼직한 이론이 아닌, 실제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 되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파울리가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당시 원문 논문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번 포스팅에서는 원문 논문과는 상관 없이 파울리의 문제 해결 방법을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인데 (1)파울리의 원문 논문은 이해하기가 힘들고, 불필요한 내용이 많다. (2)파울리의 논문은 새로운 이론을 전개한다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니, 굳이 원문의 디테일한 내용을 볼 필요는 없다 입니다.
(복습1) 대수적인 방법으로 단조화 진동자 문제 풀기
학부 수준의 양자역학 교과서에서는 행렬 역학의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것은 단 한 번 등장합니다. 바로 단조화 진동자 문제를 풀 때 입니다. 물론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도 되지만, 이 문제의 경우에는 어쩐지 행렬 역학의 방법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이 더 깔끔합니다. 간단하게 복습을 하면,
(1) $A = X+iP, A^{\dagger} = X-iP$와 같이 새로운 행렬(연산자) $A, A^{\dagger}$를 정의한다. (normalization이 적당히 들어와야 할 텐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2) $[X, P] = i\hbar$의 성질을 이용하면, $H = \frac{1}{2}P^2 + \frac{1}{2}X^2 = A^{\dagger}A + \frac{1}{2}$ 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3) 역시 $[X, P] = i\hbar$로 부터 $[A, A^{\dagger}] = 1, [A^{\dagger}A, A] = -A, [A^{\dagger}A, A^{\dagger}] = A^{\dagger}$ 가 성립한다.
(4) 위 (2), (3)을 잘 조합하면, $E_n =\hbar \omega(n + \frac{1}{2})$ 를 얻는다
입니다. 핵심은 새로운 연산자 $A, A^{\dagger}$를 도입하여, 해밀토니안 $H$를 $A, A^{\dagger}$를 이용하여 표현한 것 입니다. 새로운 연산자의 도입이 쓸모가 있으려면, $A, A^{\dagger}$을 이용한 해밀토니안의 표현은 $X,P$를 이용한 해밀토니안의 표현보다 더 간단해야 하며, 교환 연산자의 계산 역시 $A, A^{\dagger}$를 사용하는 것이 $X,P$를 사용하는 것 보다 더 간단해야 합니다. 실제로 단조화 진동자의 경우 $A, A^{\dagger}$를 도입하면 $X, P$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보다 수학적으로 더 깔끔한 계산이 가능합니다.
(복습2) 대칭성을 이용한 2차원 단조화 진동자 문제 풀기
https://studyingrabbit.tistory.com/47?category=911713
대칭성을 이용하면, 구체적인 물리 문제는 매우 쉽게(?) 풀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예시는 이미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위 포스팅에서는 2차원 단조화 진동자 문제를 마치 3차원 회전과 관련된 수학적 구조를 도입하여 쉽게 풀었습니다. 위 포스팅을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위 포스팅을 먼저 읽고나서 이 글을 계속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복습3) 라플라스-룽게-렌츠(Laplace-Runge-Lenz) 벡터 (LRL)
고전역학에서 케플러 문제를 공부하다 보면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벡터는 보통 $\vec{A}$로 쓰는데, 중심력장이 $F(r) = -\frac{k}{r^2}\hat{r}$ 일때,
$$\vec{A} = \frac{1}{m}\vec{p} \times \vec{L} - k\frac{\vec{r}}{|\vec{r}|}$$
로 정의 됩니다. 이 벡터는 보존되는 벡터로, 간단한 계산을 통해서 $\frac{d}{dt}\vec{A} = 0$를 보일 수 있습니다. 고전역학에서 물리량 $A$가 보존양인 경우, $A$와 해밀토니안 $H$의 푸아송 괄호는 0이 됩니다, $[A, H]_{\text{classical}}$. 디랙의 정준 양자화에 따르면 양자 역학적인 경우에도 두 연산자의 교환연산자는 0이 되고, 따라서 $A$는 보존량이 됩니다. 고전 역학이든 양자 역학이든, 역학 문제에서 보존량을 찾는다면 문제를 풀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LRL 벡터를 양자역학적인 연산자로 표현하려면 $P, L$의 곱을 대칭적으로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즉, $A = \frac{1}{2m}(P \times L - L \times P) - k \frac{X}{|X|}$ 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P, X, L$은 모두 3차원 벡터 공간 벡터에 대응되는 행렬 입니다.
(실전문제풀이) 각운동량과 LRL의 연산법칙과 해밀토니안의 표현
해밀토니안 $H = \frac{P^2}{2m} - \frac{k}{|X|}$에 대해서 위에서 정의한 $A$와 각운동량 연산자 $L$이 어떠한 교환 관계를 만족시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X, P] = i\hbar$를 연속적으로 사용해서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면 되는데, 그 결과는
$$[H, L_i] = 0$$
$$[H, A_i] = 0$$
$$[L_i, L_j] = i\hbar \epsilon_{ijk}L_k$$
$$[L_i, A_j] = i\hbar \epsilon_{ijk}A_k$$
$$[A_i, A_j] = -i\hbar \epsilon_{ijk}L_k\frac{2}{m}H$$
입니다. 첫 두 식은 $L, A$가 보존되는 양이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고, 세 번째 식은 $L$이 각운동량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과 입니다. 네 번째식은 $A$가 벡터 연산자라는 수학적 사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결과 입니다. 마지막 식은 실제로 계산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한 번쯤 연습삼아 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계산할 때는 물리량들이 연산자가 아닌 벡터의 경우 어떻게 계산될 것 인지를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또한 아래와 같은 관계식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vec{A} \cdot \vec{L} = 0$$
$$|\vec{A}|^2 = \vec{A} \cdot \vec{A} = k^2 + \frac{2}{m} H (L^2 + \hbar^2)$$
첫 번째 식은 고전역학에서 $\vec{A}$와 $\vec{L}$이 수직이라는 것으로 부터 바로 얻어지는 결론입니다. 두 번째 식은 귀찮은 계산을 좀 해야합니다. 연산자와 벡터를 중복하여 표기했는데, 그 의미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단조화 진동자 문제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새롭게 연산자를 도입하고, 새로운 연산자로 해밀토니안을 표현 했을 때, 새로운 표현법이 만일 원래 표현법 보다 더 간단하다면 새로운 표현법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 입니다. 위 두번째 식은 해밀토니안을 $A, L$ 를 통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A, L, H$간 교환관계는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수학적으로 자명한 것 입니다. 여기서 자명하다는 의미는 (물리적인 가정이나 직관이 없이) 단순히 수학적인 성질만 이용해서 교환관계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A, L$ 간 교환 연산자를 보면, $A, L$이 뭔가 각 운동량의 교환연산자를 만족시키는 것 처럼 보입니다. $L$은 애초에 각운동량이니 $L$이 각운동량의 교환연산자를 만족하는 것은 당연하고 $[L_i, A_j]$ 의 교환연산자가 운동량의 교환연산자 처럼 보이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 처럼 $A$가 벡터연산자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A$끼리의 교환연산자는 운동량의 교환연산자 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A, L$를 선형 결합한 새로운 연산자를 정의하여 이들간 교환연산자가 운동량의 교환연산자가 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A$간의 연산자에서 $\frac{2}{m}H$가 나왔다는 것과 인력이 작용하는 경우 고유값은 $E<0$ 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부터,
$$\tilde{A} = \sqrt{\frac{-m}{2E}}A$$
와 같이 정의하고,
$$T_i = \frac{1}{2}(L_i + \tilde{A}_i)$$
$$S_i = \frac{1}{2}(L_i - \tilde{A}_i)$$
를 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경우, 이 연산자들간의 교환연산자를 계산하면,
$$[H, T_i] = [H, S_i] = 0$$
$$T^2 = S^2$$
$$[T_i, S_j] = 0$$
$$[T_i, T_j] = i\hbar \epsilon_{ijk}T_k$$
$$[S_i, S_j] = i\hbar \epsilon_{ijk}S_k$$
을 만족하게 됩니다. $A, L$를 이용한 경우보다 훨씬 더 간단해지며, 수학적인 구조도 더 간결합니다. $T, S$는 각각 자신들끼리는 각운동량 교환연산자와 동일한 관계를 만족하고, $T$와 $S$사이에는 교환이 성립합니다. 또한, 해밀토니안 연산자와 $T, S$는 교환 관계가 성립합니다. 해밀토니안 연산자와 교환관계가 성립하는 연산자는 매우 중요한데, 이 경우에는 $T$나 $S$이 교유벡터가 $H$의 고유벡터가 됩니다. 따라서, $H$의 고유벡터를 찾기 위해서는 $T, S$이 교유벡터를 찾으면 됩니다. 매우 구체적인 형태의 $H$의 고유벡터를 찾는 것 보다, 수학적으로 더 간단한(각 운동량에 대한 수학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T, S$의 교유벡터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H, T] = 0$ 이기 때문에, $H$의 고유 상태는 $T$의 고유 상태가 됩니다. 연산자 $T$가 각운동량의 연산법칙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T$를 각운동량 연산자처럼 취급할 수 있고($S$도 마찬가지 입니다), $T^2, T_z, S_z$의 공통된 고유 상태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곧 $H$의 고유 상태도 됩니다. $T^2$의 고유값이 $t(t+1)\hbar^2$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여기서 $t = 0, \frac{1}{2}, 1, \frac{3}{2}, ...$ 가 가능합니다.
식 $|\vec{A}|^2 = \vec{A} \cdot \vec{A} = k^2 + \frac{2}{m} H (L^2 + \hbar^2)$을 다시 정리하면,
$$\tilde{A}^2 + L^2 = 4T^2 =-\hbar^2 - \frac{k^2m}{2E}$$
를 얻습니다. 양변에 $T^2$의 고유 벡터 $| \psi \rangle$를 적용하면, 좌변은 $T^2 | \psi \rangle = t(t+1)\hbar^2 | \psi \rangle$ 이 되고, 우변은 $(-\hbar^2 - \frac{k^2m}{2E}) | \psi \rangle$ 이 됩니다. 이를 정리하면,
$$E = \frac{-mk^2}{2\hbar^2(2t+1)^2}$$
을 얻습니다. 여기서 $t = 0, \frac{1}{2}, 1, \frac{3}{2}, ...$이기 때문에, $n = 2t +1$으로 다시 정의하면,
$$E = -\frac{mk^2}{2\hbar^2} \frac{1}{n^2}$$
을 최종적으로 얻게 됩니다. 이 값은 바로 보어가 유도했고, 수소의 선 스펙트럼 문제의 에너지 고유값과 동일한 결론입니다! 즉 $[X, P] = i\hbar$에서 출발하여, $E = -\frac{mk^2}{2\hbar^2} \frac{1}{n^2}$를 유도한 것 입니다.
파울리의 해를 통해서 행렬 역학의 기본 가정만 받아들인다면 개별 물리 문제를 풀 수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만일 파울리가 수소 원자 문제를 풀지 못 했다면, 하이젠베르크-보른-요르당의 이론은 그 당시 물리학 커뮤니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하이젠베르크-보른-요르당 곁에 또 다른 천재 물리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초기 양자역학이 발전이 앞당겨 진것 같습니다.
파울리는 이 이후에도 초기 양자역학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파울리 배타원리"를 통해서 페르미온과 보존의 차이를 설명하였고, 비상대론적인 스핀 효과를 포함하는 이른바 파울리 방정식을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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